전기차보다 뛰어난 스포츠카, 포르쉐 타이칸 4S 시승기

차봇매거진
2021-05-24

엥? 911보다 좋다고요?

귀를 의심했죠. 하지만 타이칸이 정식으로 베일을 벗기 반년 여전, 유럽 모처에서 만난 포르쉐 관계자는 분명 그렇게 말했어요. 


독일 바이삭의 개발센터에서 수십 년간 포르쉐 시제품을 테스트해온 전문가들 입에서 그런 평가가 나오고 있다고 말이죠.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신형 911을 시승하러 갔다가 만난 포르쉐 직원에게서 그런 말을 듣게 될 줄 누가 알았겠어요. 


50년을 갈고 닦으며 진화해온 911을 이제 갓난 전기차가 능가한다니 말이에요.

그런데 타이칸 시승을 마친 지금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적어도) 사람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겠다고 말이죠. 


그만큼 타이칸은 포르쉐의 새 시대를 여는 전기차, 아니 스포츠카로 손색없어요. 

포르쉐는 타이칸 출시 이전에 이미 여러 가지 전기화 모델(플러그인 하이브리드 등)을 판매했고, 심지어 순수 스포츠카 박스터의 전기차(연구용)를 선보이기도 했는데요. 


포르쉐의 순수 전기차 양산 모델은 타이칸이 처음이고, 전기 파워트레인 결합만 시도했던 이전 모델들과 달리 전용 플랫폼을 바탕으로 뼛속부터 전기차로 태어났다는 결정적 차이를 가집니다. 


비록 그것이 포르쉐가 개발해 현재 파나메라에 사용된 폭스바겐 MSB 플랫폼을 전기차용으로 대폭 개량

한 것이라곤 하지만요. 

전용 플랫폼을 사용한 전기차라 해도 배터리를 깔고 앉은 바닥 위에 승객 공간을 마련하느라 껑충한 (혹은 아예 크로스오버 SUV 형태를 취하는) 경우가 많은데, 타이칸은 ‘4도어 스포츠카’라는 포르쉐 주장에서 크게 벗어나 보이지 않아요. 


겉 치수는 파나메라에 근접할 정도로 크지만, 그보다는 (전기화된) 911에 뒷좌석 공간과 도어를 추가해 만든 차처럼 911에 가깝게 느껴지죠. 

실제로 운전자 시트 포지션은 911에 가깝고 무게중심은 911보다도 낮다고 해요. 


물론 타이칸은 911보다 500kg쯤 무겁고 휠베이스도 기니까 기본 신체 조건이 911보다 좋다고 할 순 없어요. 


하지만, 그렇게 따지고 들면 911의 RR 배치도 스포츠카 운동성능에 이상적이라고 할 순 없잖아요.

어쨌든 운전석에 오르고 보면 스포츠카 분위기만큼은 합격점을 주고 싶어요. 


우선 세단 같지 않은 시트 포지션이 그렇구요. 


눈앞에 펼쳐지는 포르쉐 스포츠카 특유의 디자인 요소들은 말할 것도 없죠.


옵션 체크를 덜 한 경우 실내 마감이 단조롭다 못해 저가형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그건 타이칸 만 그런 것은 아니에요. 


천하의 포르쉐라 해도 ‘깡통’ 차는 소박한 마감재를 감수해야 하니까요.

타이칸의 실내는 좀더 얄팍한 느낌이 있는데, 전기차라서 무게를 줄이느라 그랬다기 보다는 ‘스포츠카라서 스파르탄 분위기로 만들었다’고 쉴드 가능한 수준이에요. 


특히 차의 시동…전원이 켜지면 실내 분위기가 사뭇 달라지죠. 


가로로 긴 곡면 디지털 계기판과 센터페시아-센터콘솔을 도배한 두 개의 화면, 그리고 조수석 글로브박스 위의 화면까지, ‘화려한 조명이 나를 감싸며’ 실내에 활기를 더하죠. 

진짜 조명을 원한다면 앰비언트 라이트까지 7가지 색상으로 덧칠할 수 있는데요. 


자칫 진지한 스포츠카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 될 수도 있어요. 


송풍구 바람방향을 터치스크린에서 조절하도록 한 것도 첨단 전기자동차임을 과시하는 듯 합니다. 


반면 계기판을 비롯한 그래픽 요소들은 기능에 충실 하느라 그런지 조금 심심해 보이는 면이 있어요. 


터치 조작 시 더딘 반응을 보이기도 하구요. 

가장 아쉬운 것은 시동(전원) 버튼인데요. 


포르쉐 전통대로 레이싱 헤리티지를 살려 스티어링 휠 왼쪽에 배치한 건 좋은데, 모양이나 누르는 느낌이 포르쉐 답지 않아요. 


스티어링 휠에 가려서 잘 보이지 않는 기어 셀렉터도 조금 당황스러운데요(테슬라나 벤츠처럼 칼럼식 변속기인줄로 잠시 헷갈림).  


기껏 911과 유사한 모양으로 만들고는 앞뒤가 아닌 위아래로 조작하도록 배치한 의도는 뭘까요? 


덤으로 ‘P’ 버튼 형상과 조작감도 시동 버튼처럼 별로. 

명색이 포르쉐 스포츠카인데 변속 패들이 없는 것도 어색하죠. 


비록 실제 기어를 바꿀 일은 없지만 패들로 회생 제동을 조절하도록 하고 (‘방방’ 엔진 회전수 맞춰주는 효과음도 넣어서) 스포츠카 주행 감성을 높였다면 어땠을까요?


물론 이런 아쉬움은 아직도 과거의 잣대에 얽매여 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포르쉐가 내연기관 모델의 스포츠 배기 옵션 마냥 타이칸에도 전자식 스포츠 사운드 옵션(70만원)을 마련한걸 보면 나름 고민이 깊었음을 알 수 있는데요. 


스포츠플러스 모드 선택 시 자동으로 활성화되는 스포츠 사운드는 역동적인 주행을 할 때 심박수를 한층 높여주긴 해요.


하지만 쉽게 귀를 지치도록 만들뿐더러 겸연쩍기도 해서(SF 효과음이 실내뿐 아니라 바깥에도 울린다죠) 얼마 못 가 꺼버렸어요. 

막상 사운드 효과를 끄고 보니, 이렇게 빠르면서도 조용하게 달릴 수 있는 차가 다른 도로 사용자들에게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지 실감하게 된 상황도 발생했는데요.


타이칸의 주행만 놓고 보면, 과한 사운드를 덧입히지 않았을 때 오히려 매력이 돋보였어요. 


효과음 없어도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초만에 도달하긴 마찬가지이고 말이죠.


100km/h까지 가속성능만 보면 911 카레라 보단 빠르고 카레라 S(또는 4S)보단 느린데요.

국산 전기차 조차 이보다 나은 수치를 제시하는 요즘이니, 이것만으론 포르쉐 스포츠카 혹은 전기차의 우월성을 논하기 어렵죠.


참, 타이칸은 최대 가속성능을 10번 이상 반복해서 사용할 수 있다고 해요. 


내연기관 포르쉐 스포츠카가 런치 컨트롤을 반복 사용해도 지치지 않는 것처럼 말이죠(일부 타사 차량은 문제가 생김). 


아무튼 이제 국내에도 타이칸 터보 S가 출시된 마당이니 4S의 직진가속성능에 대한 호들갑은 접어두기로 하구요. 

타이칸은 포르쉐 전기차 답게, 바람 가르는 소리, 타이어 신음, 구동계에서 들리는 약간의 전기 소음만으로 산길 연속 코너를 헤집고 다니는 쾌감을 줍니다. 


기존 전기차들처럼 뒤뚱거리거나 마지못해 달리는 느낌 없이, 정말 스포츠카다운 기세로 말이죠. 


리어 모터에 2단 기어가 물려있지만 운전자의 조작이 통하는 장치는 아니라서, 페달과 스티어링 휠 조작 외에 운전자가 할 수 있는 것은 (가속페달 연동) 회생 기능을 켜고 끄는 정도인데요. 

이걸 켰을 때는 가속페달을 늦출 때 내연기관 자동차의 엔진브레이크에 해당하는 반응이 나타나는데, 기본 강도는 의외로 약하고 단계 조절은 할 수 없어요. 


껐을 때는 최신 내연기관 자동차의 코스팅 또는 글라이딩 모드처럼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더라도 타력을 이용해 아무 저항감 없이 미끄러지듯 나아갑니다. 


이 기능은 노멀 주행 모드에선 꺼져있고 스포츠 모드부터는 자동으로 켜지는데, 스티어링 휠의 버튼으로도 켜고 끌 수 있어요. 


다만 자주 누르기에는 버튼 조작감이 별로라는. 

전기차에서 종종 볼 수 있는 원페달 주행 대신 이런 방식을 택한 건 포르쉐의 내연기관 스포츠카와 유사한 느낌을 주기 위함이라고 하는데요. 


포르쉐 스포츠카라면 (기어 변속은 없을지언정) 가속페달과 감속페달을 적절히 조절하는 재미를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가 봐요.


그대신 브레이크페달을 밟을 때는 회생 제동이 마찰 브레이크의 역할을 상당부분 대체하도록 공을 들였는데, 이건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전혀 눈치재지 못할 정도로 이질감이 적더군요. 

타이칸의 뛰어난 점은 바로 ‘포르쉐 스포츠카’로 받아들이기에 별다른 이질감이 없다는 점이에요. 


처음 만들어본 전기차인데도 불구하고 말이죠.


어지간한 코너에서는 차를 훅 던져 넣은 다음, 즉각적인 토크로 (소리 없이) 밀고 나오면 끝나버려요. 

타이어는 이 악문 채 뻐팅기고 차체는 옆으로 기울어지는 느낌 없이 요지부동이죠. 


시트 포지션은 911이구요.


그러다 보니 연속 코너를 돌아도 2톤 넘는 차 무게는 잊게 돼요. 


‘역시 전기차라서 신속하면서도 조용하군’ 생각하면서도 배터리 무게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져 버리는 신기한 경험. 

또 한가지 잊게 되는 것이 뒷좌석 공간과 뒷문인데요. 


아, 타이칸 뒷좌석이 형편없이 좁거나 승차감이 고약하다는 뜻은 아니에요. 


하지만 뒷좌석을 중시한다면 타이칸 대신 파나메라, 특히 이그제큐티브 (롱휠베이스) 모델을 선택해야겠죠.

타이칸 운전에 몰두하다 보면 이 차가 4도어 세단이 아니라 2인용, 아니 나 혼자 타는 스포츠카 같은 착각에 빠져버려요.


파나메라에 가까운 크기(그리고 무게)를 떠올리면 다시 한번 놀라게 되죠. 

파나메라 E-하이브리드 무게쯤 되는 타이칸이 이런 움직임을 보일 수 있는 건 전기차 특징에다가 포르쉐 4D 섀시 컨트롤이 접목된 덕분인데요. 


바꿔 말하면 낮은 무게중심 및 2모터 사륜구동과 함께 3챔버 에어서스펜션, 토크벡터링 플러스, 액티브 롤 스태빌라이제이션, 리어 액슬 스티어링 등 첨단 섀시 기술을 동원하고 이를 하나로 아우르는 종합적인 연출을 통해 차 무게를 속여버린다는 것이죠. 

차체가 기우는 것을 틀어 막으며 네 바퀴를 노면에 밀착시키고 앞머리를 휙 잡아챌 수 있도록 회전력을 높여주니 감탄을 연발할 수밖에요. 


그 와중에 만난 갑작스런 요철마저 능수능란하게 타고 넘으며 유연성을 보여주니 말 다했죠. 


직진가속이건 코너링이건 빠른 건 당연하고 주행소음을 잘 차단한데다 승차감마저 기대이상으로 좋으니 이건 뭐. 

이러한 타이칸의 성능 잠재력이나 스포츠카 감성을 제대로 맛보려면 만만치 않은 추가지출(옵션체크)을 감수해야 하지만, 일상적으로 포르쉐를 즐기기 위한 목적이라면 굳이 필요하지 않은 옵션들이기도 해요. 


타이칸의 이색적인 면모를 볼 수 있는 한가지는 구동방식인데요. 


타이칸 ‘4S’는 4륜구동이 기본이고, 보통의 주행에선 뒷바퀴로 상당 비중 힘을 몰아주어 후륜구동 스포츠카 특성을 만들지만, 에코모드에 해당하는 ‘레인지(주행거리)모드’에서는 앞차축 모터만 사용하는 앞바퀴굴림으로 바뀌어버려요. 

고지식하게 앞바퀴굴림만 고집하는건 아니고, 상황에 따라 뒷바퀴로 힘을 나누기도 하지만, 급한 코너에선 영락없는 앞바퀴굴림 차. 


2억원에 가까운 날렵한 자태의…타이어폭도 뒷바퀴가 훨씬 넓은데… 


레인지모드에선 에너지를 아끼는 것이 우선이니까 가속페달 등의 조작에 대한 반응이 내 마음 같지 않다는 점도 이색적인 느낌에 한몫 하는데요. 

대신 레인지모드를 적극 활용해 주행해 보니 350km 가까이 달렸는데도 배터리가 26% 남아(출발당시 97%) 100km이상 더 갈 수 있겠더군요. 


그렇다고 이 수치가 평지 곧은길만 달려 얻은 연비(전비)는 아니에요.


구룡령, 운두령 등 이름난 와인딩 코스를 뒤가 털릴 정도로 내달리며 산’들’을 넘었고 고속도로에서는 XXXkm/h까지 급가속 하는 등 쉬는 시간 합쳐 7시간 동안 주행한 결과거든요. 

그렇다면 레인지모드를 배제하면 어떨까요? 


스포츠플러스 모드만으로 100km를 주행해봤는데요. 


이번에도 고속구간은 물론 산 넘으며 연속 코너들을 돌파하는 구간들로 코스를 짰고 운전은 의도적으로 더 과격하게 했어요. 

배터리 98%에서 출발했는데 도착해보니 남은 전력 71%. 


아직 279km, 노멀 모드로는 292km 더 주행할 수 있는 전력이랍니다. 


연비(?) 신경 안 쓰고 밟더라도 국내 인증 주행거리 289km보다는 한결 여유 있음을 확인한 거죠.

이번 시승에선 충전관련 체험을 할 기회가 없었는데요. 


800볼트 전압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타이칸은 5분 충전으로 최대 100km 주행가능 하다고 해요.


그래도 타이칸 구입 만족도를 높이려면 ‘집밥’은 필수이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뛰어난 스포츠카이기에 앞서 어쨌든 전기차니까요. 

참고로 타이칸 4S는 오버부스트 출력이 530마력인 퍼포먼스 배터리(251km)와 571마력인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가 있는데, 이번에 시승한 차들은 모두 후자였어요. 


기본 차 가격은 1억 4560만원으로 911 카레라와 비슷하고, 배터리를 ‘플러스’하면 1억5400만원 정도 됩니다. 


참, 이번에 추가로 출시된 761마력 타이칸 터보 S의 국내 인증 주행거리도 289km네요.